2017년 정리 단상 미분류


* 정확히 말하면 2017년 만났던 사람들 정리 단상.

* 2월
  1) 장기 파견 근무를 가게 되면서 전남자친구(A)와 헤어짐. 내가 헤어지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유증이 한 반년은 간 것 같다. 아직도 인스타 스토킹을 가끔 하는데, 아마 A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면 속이 꽤나 쓰리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그리고 가끔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하기도 함.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A만큼 상냥하고 이해심 많고 남편감으로 딱인 상대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다시 만나는 건.. 그러는 거 아니다 싶어서 재결합 계획은 없음. 물론 상대방이 재결합을 원하는가는.. 나야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2) B와 세 번 정도 데이트. 잘생기고 몸 좋고 첫 데이트에 장미꽃을 사올 정도로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친구였지만, 세번째 데이트 바로 다음날 각자 서로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러 나온 상황을 딱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정리됨. 나는 별로 상관 없었는데... 연락을 안받더라구.
  
  3) C와 간간이 만나기 시작함. C는 이른바 fuckboy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냥저냥 서로 불편할 일 없어서 한달 정도 간격으로 몇 번 만났다. 근데 굳이 계속 만나야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아서 연락 끊음. 

* 3월
  1) 얼굴이 정말 너무 지나치게 내 타입이었던 D와 두 번 데이트. 솔직히 연애가 아니라 그냥 얼굴만 볼 수 있는 관계라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잘생겼었지. 물론 이제 기억도 안나지만. 여하튼 D가 다른 나라로 발령받으면서 끝. 애초에 얘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 4월
  1) E는 한 번 만나서 커피 마시고 그 친구 다니는 대학 교정을 걸으며 수다를 떠는 수준의 되게 건전한 데이트를 했다. 사실 그 쪽에서 계속 연락이 오긴 했는데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아서 답장을 안했음. 복합적인 이유에서였는데, 첫번째로 나는 인도계를 만나고 싶지 않음. 왜냐면 옛날에 장기 연애를 했던 친구가 인도계였어서 왠지 그 당시로 회귀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두번째로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그 내용을 첫 데이트부터 나랑 공유하던 애라서 뭔가 반사적으로 깊게 발들이면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2) 내 2017년 데이트사에 한발짝일지언정 깊은 족적을 남기고 간 F. 혼자 휴가 갔다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게 된 걸 인연으로 저녁도 먹고 술도 마시고, 뭐 그랬지. 물론 여기로는 출장 온 친구라 다음날 바로 돌아가서 ㅋㅋㅋ 그 후로는 진짜 간간이 연락하고 있으며 얼굴 볼 일도 없지만, 대화가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뚜렷하다. F를 계기로 얼굴도 물론 무척 중요하지만 그래도 대화(개그코드)가 얼굴보다 아주 조금 더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음. 그리고 그 당시 내가 한참 타고 살이 붙어서 외모 수치가 바닥을 칠 때였는기 때문에 F는 내 자존감 상승에도 기여를 한바 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음.

  3) G도 그냥 두어번 데이트 한 사람. 특별한 감상은 없음. 다만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관심이 지대해보이던 사람이더라도 실제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낌.  나도 선입견의 노예인지, 여자들이 함께 있을 때 호감을 꾸며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는데 남자도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을 안했었는데 G를 만나면서 그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됨. 그리고 첫 만남에 잘 차려입고 나오라고 말하는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함. 애초에 네가 입고 나온 정장도 되게 별로였거든..?

* 5월, 6월 : 뉴페이스 없음. C 가끔 만남.   

* 7월 : 아무것도 없음.

* 8월
  1) H. 하하핳하하하하 H. H랑은 꽤 오래 전의 과거가 좀 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이리로 올 일이 생겨서 같이 시간 보내는 일이 잦았다. 올해 연애사에서 내가 또 배운 점이 있다면, 휴가지에서 생긴 일은 휴가지에 묻고 와야한다는 것. 함께 보낸 휴가가 즐거웠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또 기분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휴가지에서 느꼈던 그 사람의 장점도 단점으로 보게될 수 있지. 결론적으로, 다시는 안만나려고.

  2) I랑은 한 번 만났고, 다시는 안 만나려고. 도대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지금까지 어떤 여자들을 만났으면 저런 수준 낮은 걸 작업이라고 거는 건가 싶었다. 잘생기기라도 했으면 말을 안해! 이탈리아계라고 해서 잘생겼을 거라는 건 정말 편견이야.

* 9월
  1) J는 출장 갔다가 만났는데, 사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나를 햇빛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해줬기 때문에 목록에 올리기로 한다. 올해 들어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었어.

  2) K를 처음 만난 것도 9월이랬더랬지. 나는 개인적으로 나는 착한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할 때가 있는데 K는 그 프로파일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친구다. 착해. 착하고, 착하다. 매너도 좋고 착하고 배려심이 많고 착하다. 근데 그게 끝. 착하다는 느낌 외에 호감이 간다든지, 재미있다라든지.. 뭐 그런 게 전혀 안 오더라. 심지어 대화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K는 나랑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고 싶어해서 한 2-3주 간격으로 세번 정도 만났는데 나는 그냥.. 뭐 그래서... 이제 안 만나려고.

* 10월
  1) L이랑도 출장 갔다가 만나서(무슨 출장을 이리 많이 갔던 건지 올해는) 로맨틱한 한밤의 산책을 했지. 꽤 맘에 들었던 친구라서 한번쯤 다시 만나고 싶은데, 얘는 승무원이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음, 그렇지만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까지 만나려고 노력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얘가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면 왠지 내가 책임을 져야할 것 같으니 그것도 싫고.. 그냥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쩌다가 우연히 같은 곳에 하루이틀쯤 있게 돼서 보는 그런 시나리오가 생겼으면 좋겠다. 와 이 극도의 이기주의와 귀차니즘이란.

  2) M도 출장(위와 같은 출장)에서 만난 친군데, 이건 좀 상황이 웃기게 되어있는데다가 현재진행형이다. 출장지에서 같이 일하던 협력직원인데 개인적인 교류는 일도 없었기에 출장 끝나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2주가 지난 지금까지, 매일! 연락을 하고 있다. M이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건지 아니면 본인도 외로우니 그냥 매일 있었던 일을 나눌 편한 상대(같은 곳에 있지도 않으니 만나야한다는 부담도 없는)가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나도 현재로서는 M과 수다떠는 게 즐거우니 그런갑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다. 재밌는 건 M의 말투라든가 얘기하는 내용이라든가, 이렇게 매일 연락하는 게 A랑 꽤 많이 비슷하다는 거. 가끔 M의 이름을 쳐야하는데 A라고 치고 급하게 지울 때도 있다. 혹자는 아직 A를 못 잊은 게 아니냐고 했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둘이 쓸데없이 겁나 비슷해서 헷갈리는 거야. 연언가. 나는 연어인 건가.

* 여하튼 이렇게 11월의 반도 가까워지고 있고, 올해는 아무 영양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냈다. 더 많이 만났어야했나 하고 후회되는 날도 있고 귀찮아 죽겠는데 뭘 나가서 남자를 만나냐, 그냥 집에서 맛있는 거 해먹고 책이나 읽으면서 뒹굴거리자 싶은 날도 있다. 요새는 후자가 더 많다. 

* 12월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별로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진 않다. 여하튼 요새 기억력이 감퇴하는 듯하여 기록용으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사진은 (여전히) 없는 요즘의 식생활 미분류


* 집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른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모종의 이유로 돈을 모아야하는데 이 곳은 외식의 단가가 상당히 높은만큼 아끼기 가장 쉬운 건 식비라는 결론을 내렸고, 
2. 한번 거하게 체한 건지 아니면 상한 음식을 먹었는지 이틀간 열이 올라 고생한 다음부터 일단 몸에 들어가는 음식은 건강하고 좋은 걸 먹자고 결심하게 되었고, 
3.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면 금방 체력이 떨어진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4. 엄마가 해두고 간 반찬을 처리해야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이 느껴졌다. 

* 여전히 돈은 잘 모이지 않고, 항상 건강한 집밥을 먹는 것도 아니며, 테니스 실력은 제자리걸음이고, 엄마의 반찬은 여전히 일부 냉동실에 고이 모셔져있기는 하다만 여하튼 예전보다 사먹는 빈도가 줄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 요새 상당히 만족스러운 아침 메뉴를 발견해 아침이 조금 즐겁다. 한동안은 과일 얼린 것을 갈아마셨는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만 아침부터 설거지거리를 만든다는 게 마음에 좀 걸렸다. 설거지는 아침에 하지 않는다. 복층이라 부엌은 1층에, 침실은 2층에 있는 구조다보니 아침에 가장 효율적인 동선은 역시 출근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와 아침 거리를 먹고 바로 집을 나서는 거라서 말이지. 아침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침에는 잡일을 하기 귀찮다에 더해서 설거지를 하다 자칫 출근 복장에 물이나 세제를 튀기게 되는 게 싫어서 모든 설거지는 퇴근 후로 미뤄두곤 한다. 요즘의 아침 메뉴 얘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고구마를 잔뜩 구워 고구마빵을 만든다. 아주 간단하다. 고구마를 오븐에 굽고, 껍질을 벗겨 으깬 다음 계란 노른자를 넣는다(고구마 하나 반에 계란 하나 정도 비율로). 난 조금 단 게 좋으니 꿀을 약간 넣어 섞어두고, 흰자로 머랭을 대충 쳐서 둘을 섞은 다음 내열 용기에 넣고 랩을 씌워 전자렌지에 7분 정도 돌리면 땡. 한끼 먹을 분량으로 자른 후 식혀 냉동 보관하면 일주일치 아침식사 준비 끝. 다음 날 아침 먹을 것은 하루 정도 미리 냉장실에 내려뒀다가 아침에 출근하며 쓱 들고만 가면 된다. 얼마나 간편한가! 간단한데다가 맛있고 질리지 않으며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이니 완벽하다. 

* 점심에는 어차피 약속이 없으면 혼자 먹으니, 혼자 먹는 날은 도시락을 싸오기로 결심했는데 여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다. 일단 도시락을 싸는 것은(그리고 설거지는) 귀찮고, 차갑게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음식을 챙겨야하니 종류에 한계가 있다. 여하튼 반찬을 여럿 놓고 식사하는 것은 누군가 차려줄 사람이 있을 때나 하는 거고, 도시락으로도 집에서 하는 식사로도 역시 한그릇 음식이 편하다. 볶음류도 괜찮고, 계란 샐러드도 나쁘지 않지만 요새는 리조또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면 양 조절을 못하기 때문에... 주말 특식이나 저녁 식사로 만들다 보면 어느새 냄비 한가득이 되어버린단 말이지. 리조또야 그냥 집에 있는 재료 아무거나 넣고 만들어도 좋고, 차갑게 먹어도 큰 문제 없고,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으며, 어차피 스톡이랑 치즈가 들어가니 기본 맛은 보장이 된다. 염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먹는 것보다야 낫겠지. 

* 여하튼 리조또는 역시 버섯을 넣는 게 제일 맛있는데, 버터 혹은 올리브 오일에 편으로 썬 마늘을 넣어 볶다가 양파(필수)와 기타 넣고 싶은 야채, 쌀을 넣고 쌀이 적당히 익었나 싶을 때까지 함께 볶아준다. 쌀이야 어차피 물 끓으면서 익을테니 그렇게 목숨 걸고 익힐 필요는 없다. 난 개인적으로 애호박을 넣는 걸 좋아하는데, 애호박은 워낙 무른 야채니 물 붓기 직전에 넣는다. 여하튼 물을 찰랑찰랑할 정도로 넣고 중불로 끓이면서 편으로 썬 버섯을 팬에 볶는다. 소금 약간(많이 뿌리면 나중에 짬), 후추 잔뜩. 물이 자작해질 때쯤 되면 물을 한컵쯤 추가하고 스톡 반개, 혹은 1/4개와 슬라이스 치즈 반장을 넣는다. 계속 끓인다. 또 물이 졸아들면 간을 봐서 물/치즈를 추가할지 말지 결정. 다 익었겠군 싶을 때 볶아둔 버섯을 넣어 섞어주면 끝.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정말 맛있다. 사실 스톡을 넣는 것은 찌개 끓이면서 라면스프 넣는 느낌이라 약간 양심에 거리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뭐, 사먹는 것보다야 낫겠지2. 

* 그러나 이 곳은 버섯이 비싸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냥 집에 있는 야채만 넣거나 닭고기를 조금 넣어 만들기도 한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닭고기와 브로콜리, 애호박을 넣은 리조또였는데 브로콜리가 너무 많았는지 영 푸르른 맛이 나서 마땅찮다. 그렇지만 역시 깨끗이 맛있게 먹어치우긴 했다. 아직 이틀치 더 남았어. 목요일도 금요일도 점심 메뉴는 리조또. 다음부터는 브로콜리를 조금 덜 넣는 걸로. 재료를 치워버리려는 욕심을 내다보면 양도 너무 늘어나고, 맛의 균형도 깨지기 마련이다. 

* 저녁은 보통 외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킵. 나는 점심 약속 잡는 걸 더 좋아하는데, 접대든 회식이든 저녁에 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 불만이다. 

* 물론 집에 있으면 팝콘도 튀겨먹고, 쿠키도 꺼내먹고, 바나나칩도 좀 주워먹고.. 그러고 있지만 여하튼 외식의 비율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통장 잔고가 반비례해 늘어나지 않는 건 의문이긴 하다만. 꺼내놓은 바나나 상태가 오락가락하시던데 오늘은 퇴근하면 바나나 브레드를 만들까 싶다. 원래는 얼려놨다가 갈아마시려고 했는데, 한동안 바나나를 안 먹었더니 냉동실에 얼어있는 녀석들이 잔뜩이라서.. 바나나는 왜 이리 빨리 익지. 



7.13., 짧게 아메리카노


* 오늘 일이 꽤 많은 날인데 공항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시간을 날리고 있다. 가끔 공항 당번이 걸리는데, 맨날 해야하는 일은 아니고 다들 공평히 순서를 돌아가며 하는 일이다보니 불평할 수야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깝긴 해.... 하긴 나만 바쁜가... 누구나 바쁘지. 어쨌건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네.

* 월말에는 회사 사람이랑 같이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가기로 했다. 지난 4월 첫 스쿠버다이빙을 했을 때의 기억이 강렬했기에 또 두근두근 기대된다. 수면 밑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각별하다. 수영 자체야 몇 년 동안 해왔지만 바닥이 환히 보이는 수영장에서의 수영과 어디까지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의 수영이 다르듯이, 고개만 들면 공기 중으로 돌아오는 수면 근처에서의 수영과 십 몇 미터를 내려가는 스쿠버다이빙도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다들 첫 해저 경험에서 느끼는 환상적인 기분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던데, 나는 오히려 처음으로 수면 밑으로 내려갈 때의 공포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해초가 붙어 미끌미끌해진 밧줄을 잡고 등에는 무거운 산소통을 지고 한 손바닥씩 수면 밑으로 내려가다보면 분명히 레귤레이터만 입에 꽉 물고 있으면 숨을 쉴 수 있고 익사할 걱정도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인 공포가 온몸을 사로잡는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장 저만큼 보이는 수면 위로 헤엄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어 몸이 당장이라도 위로 튀어올라가려고 움찔움찔한다. 거기에 제동을 거는 것은 정신 차려, 본능에 속지 말라고, 안 죽는다고 말하는 이성과 깊은 심호흡.

* 사실 이성과 본능 간 줄다리기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겪는 일이다. 5분만 더 자자 - 지금 일어나야 함, 오늘 힘들었으니 소파에 누워볼까 - 설거지하고 씻고 누워라, 하나만 더 먹을까 - 손 떼 등등, 특히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 하루에도 여러 번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곤 한다. 그러나 첫 스쿠버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줄다리기가 사투, 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아, 이게 바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flight or fight response구나 싶었다. 사실 문명화된 현대사회에 살며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에 몇번이나 대면할 것이며, 본능적인, 살아야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공포에 사로잡힐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로서는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내가 무슨, 정글에서 호랑이를 만나봤겠어 아니면 내 목숨을 내놓고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어야했던 적이 있겠어. 여하튼 그 상황에서 이성이 본능을 설득해 내 몸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성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고, 거기에 더해 특정 직종을 가진 사람들을 엄청 우러러보게 됐는데 말이지. 사실 나는 수트 입고, 산소통 달고, 레귤레이터 물고, 마스크 끼고. 얌전히 하라는 대로만 하면 멀쩡히 숨 잘 쉬면서 헤엄쳐 다니다 무사히 물 밖으로(안전지대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만큼 이성이 본능을 설득하기도 쉬웠을 거다. 사실 그 상황에서 못 견디고 뛰쳐나갔다고 하면 그건 공포증이지. 그렇지만 그런 안전장비도 없고, 전혀 조절이 불가능한 상황에 뛰어들어야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소방관이라든가,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러 간다든가. 분명 생존 본능은 가만 있어, 죽을 수도 있다고, 도망 가라고 소리를 칠텐데 그 본능을 다스려가면서 직업 윤리든 도덕의식이든 아니면 인간성이든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정신줄을 잡고 그 상황에 정면으로 뛰어든다는 게 말이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 여튼 결론은 뭐, 스쿠버다이빙 또 하러가서 신난다고. 두번째 할 때는 확실히 침착해지더라구요.

* 오늘 되게 오래 걸리네. 커피를 한잔 더 시켜야하나.
 

7.5., 짧게 미분류


* 보스가 없는 오후는 너무너무 좋아. 시간도 너무 빨리 가. 

* 뜨거운 액체를 믹서기에 돌리면 폭발한다는 것을 배웠다. 엊그제부터 토하고 열오르고 약한 장염의 기운이 느껴지길래 아침에 누룽지를 끓였는데, 조각이 너무 크다 싶어 믹서기에 붓고 아무 생각없이 스위치를 눌렀더니 펑. 출근하느라 고대로 두고 나왔는데 집에 가서 잔해를 치울 생각하니 막막하네 ㅋㅋㅋㅋㅋㅋ 웃는 데 웃는 게 아냐 ㅋㅋㅋㅋ 나는 미음이 먹고 싶었던 것뿐인데. 

* 여하튼 엄마가 누누이 강조하다시피 섭생이라... 섭생.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은 며칠이었다. 밀가루에 편중된 식사도, 안먹을 때는 아예 굶고 간식류로 배를 채우는 것도, 잘 시간도 모자라다고 십분도 안돼서 점심을 후루룩 마시고 누워버리는 것도 이제 그만. 물 많이 마시고, 제시간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고, 꼭꼭 씹어서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애초에 위도 별로 안 좋은 인간이 뭐 믿을 구석이 있다고 배째라로 지냈던 것이냐. 근데 오늘 원래 브라질리안 츄라스코 먹으러 가기로 했었는데. 시나몬 설탕 발라 구운 파인애플 먹고 싶었는데. 

* 요새 꽂힌 노래는 매드클라운(feat.다비치 이해리)의 거짓말. 반복 재생 중. 

* 어제는 열이 안 떨어져서 한시간 일찍 조퇴했었는데, 여기는 출퇴근시간 러시아워가 진짜 헬게이트 수준이라 평소 퇴근 후 집에 가는 시간의 약 사분지 일이 걸렸다. 평소 다섯시 칼퇴 시 여섯시에 도착한다면, 어제는 한시간밖에 일찍 안나왔는데 네시 이십분에 도착했어. 말도 안돼. 근데 고작 한시간 일찍 퇴근한 것 가지고 삶의 질이 어찌나 달라지던지. 미뤄왔던 빨래도 개키고, 이불 빨래도 새로 돌리고, 설거지도 하고, 꽃도 갖다 버리고, 바나나 빵도 구워보았다. 정말 사소하고 하기로 마음 먹으면 금방 하는 일들이지만 해 떨어진 후 집에 들어오면 만사 귀찮아진단 말이지. 옷 갈아입고 저녁 차려먹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다 빠지는데. 퇴근시간 조정해줬으면 좋겠다. 아침에 한시간 일찍 나오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 집에 가는 길에 컨디셔너 사야지. 꽃도 새로 사야지. 여기 와서 들인 취미는 일주일에 한번씩 꽃 가는 것.

테니스 친 얘기 아메리카노


* 요새 날이 너무 추워 수영을 그만두고(두 번밖에 안 갔지만) 뭔가 운동이 될만한 걸 꾸역꾸역 찾아보던 중이었다. 여기서는 워낙 걸을 곳이 없다보니 뭔가는 해야겠는데 나는 헬스장에 가는 걸 안좋아하고, 집에서 홈짐을 하자니 인간이 게을러서(..). 요가는 아직 하고 있지만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뭔가 숨이 차는 운동을 해보고 싶었어. 처음에 든 생각은 승마였는데, 아무리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고는 해도 내 기준에서는 비싸더라. 일주일에 한번밖에 못하는데다, 승마장까지의 거리가 꽤 된다는 것도 마이너스. 온수가 나오는 수영장을 찾아볼까도 싶었는데(지금 다니는 수영장은 사이즈는 좋은데 물이 너무 차가워서 요새는 차마 몸을 담글 엄두가 안 남) 보통 온수가 나오는 데는 호텔 내에 있는 수영장이라 너무 작아. 수영장이라면 적어도 25미터는 되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10미터짜리 풀에서 뭘 어쩌라는 건가요. 

* 이래저래 이것 빼고 저것 빼고 늑장을 부리다 결국 요새 회사 동료가 푹 빠져있는 테니스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어제 첫 수업을 받았다. 그 동료는 테니스를 시작한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완전 취향인지 주말 포함 일주일에 일곱번을 치러다니더라. 그리고 요새는 테니스를 치기 위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고까지 말할 정도. 여하튼 어제 점심시간에 같이 갔는데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어려웠다. 

* 나는 중고등학교 때 구기 종목에 굉장히 취약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공이랑 연관된 운동은 무조건 못할 거라고 스스로 단정짓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공을 이렇게 채 가운데에 사선으로 맞혀서 이렇게 이렇게 부드럽게 넘기고 팔을 어깨 너머까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다는 게 꽤 어려웠다. 손목을 꺾고 쳐야한다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는 하도 공을 깡깡 맞혀대서 거의 테니스 채로 야구하는 기분이었음. 하도 안 뛰다 뛰어다니니 발바닥도 아프고. 근데 하다보니 재미도 꽤 붙고, 잘한다 잘한다 하도 칭찬을 받아서 더 신이 났다. 물론 어제는 발바닥 - 종아리 - 팔의 순서로 순차적인 근육통이 와서 끙끙거렸고 오늘 아침에도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이 안 나 빌빌거렸지만서도. 그러고보니 종아리 알 풀어준다는 걸 깜박하고 그냥 자버렸네. 팔은 아직도 아프다. 

* 여하튼 빨리 배운다고 잘한다고 칭찬을 듬뿍 받았는데, 나는 워낙 당근 체질이라 내일도 점심 때 가볼 생각이다. 호호. 오늘은 좀 쉬고. 어제 저녁 자리에서도 같이 치러갔던 동료가 이래저래 칭찬을 해줬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그리고 나랑 비슷하게 테니스를 전파당한) 다른 사람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 '기본적으로 운동을 잘하게 생겼잖아요, 체형도 그렇고'. ... ..... 저도 공을 받아치다 팔이 나갈 것처럼 뼈대부터 가느다랗고 여리여리하게 태어나고 싶었습니다만. 

* 사실은 사실이지. 체격도 좋고 기본적으로 건강한 체질이라서인지 뭔가 운동 및 그 비슷한 것을 시도했을 때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다만 문제는 지구력. 조금만 숨이 차거나 힘들어지면 쉬어버리는 편이고, 기본적으로 누워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게으른 인간이라 뭔가 운동을 꾸준하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음. 아, 그리고 균형 잡는 것에는 무척 약하다. 그렇지만 수영도 크로스컨트리도 스쿼시도(아주 조금밖에 안배웠지만) 심지어 포켓볼이나 다트를 할 때도 초반에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잘하는 편이라고 자주 들었다. 결국 중간 정도 하다 그만둬버린다는 건 별개로 하고. 그러니 어제의 코멘트는 칭찬으로 듣겠다. 이 영광을 제가 제 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제 팔에게 바치겠습니다. 내 팔은 평균보다 조금 길어서 특히 포켓볼 칠 때 보기 좋음. 

* 내일도 테니스 치러 가야지. 날이 다시 따뜻해져서 수영장에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꾸준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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